2010/03/13

02. 동대문야구장터

등록된 분류: └ 1. riding, └ 흔적이 좋다     — 태그:     — at 03:08     

흔적이 좋다 02. 동대문야구장터
봄에는 청룡기, 가을에는 봉황대기,
국내 고교야구의 시작이자 끝이며
학생야구의 전부였던 동대문야구장.

중학생 시절 운동장에서 뛰어놀다 야구부 감독님으로부터
“학생, 야구해볼 생각 없나?” 라는 제안을 받고 야구는 내게 특별한 운동이 되었다.
“내일 학교로 어머님 모시고 와.”
그래, 학교에 어머님 모시고 오라는 말만 없었더라면
난 야구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야구선수 = 엄마가 자주 학교에 오셔야하는 학생

출신 중고등학교 야구부가 전국에서 꽤 상위 팀이었던 탓에 응원하러 동대문 참 자주 갔다.
그 해 야구부 전력이 우승을 노려 볼만 하면 일단 학교 운동장에서 응원연습이 잦았고
보통 8강정도 진출하면 그때부턴 수업중단 to 동대문 점령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수업도 안 하고, 대낮부터 떳떳하게 시내에서 콧바람도 쐬고

이기면 기뻐하고
지면 깨끗하게 잊었다.
나를, 나를 대신해 싸워준 친구를 위로했다.

오줌냄새, 나프탈렌 냄새 자욱했던 동대문야구장은 순수함과 일탈의 상징이었다.


2003
우연히 곁을 지나다 마침 경기가 있어 (옛 생각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다.
여자친구가 자꾸 야구규칙을 설명해달라기에 경기가 잘 안 보이는 외야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403
혼자 멍때리러 간 적도 있다.

그랬던 동대문야구장이 재작년 철거됐다.
프로야구 출범 첫 개막전이 펼쳐진 구장이었다.
학기 초에 받은 교과서는 모조리 책상서랍에 넣어두고 야구만 하던 애들이
봄, 가을마다 죽을 각오로 던지고 때리던 경기장이었다.
정말 뜬금없으면서도 대안이 없는 ‘소양강처녀’를 부르며 영혼이라도 판 것마냥 미친 듯 응원하던 스탠드였다.


20100319FRI

그 자리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짓고 있다.

동대문야구장이 사라지면서
아이들은 더 새롭고 좋은 야구장에서 시합하고
관중들은 더 깨끗하고 편리한 환경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도 있다.
헌데 그건 결과론일 뿐이고 그마저도 과연 의도된 바인지 의심스럽다.

동대문야구장에도 역사는 충분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필요했다 하더라도 굳이
100년 가까이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얼룩들로 가득했던 동대문야구장과 바꾸어야만 했을까.

답글 9개 »

  1. 아버님과 아버님 친구분들이 5회쯤이면 거나하게 취해 계셨던 동대문야구장.
    아저씨들이 운동장 뛰어 들어 가면 니가 가방 지켜야해 한마디에 각오를 다잡았던 곳.
    야구를 지금도 가장 사랑하지만 다시는 경험 못 할 기억을 주었던 곳.
    지난주에 올만에 갔더니 거대한 구멍이 파여있던데…

    답글 - yongdol — 2010/03/13 @ 13:48

  2. 동대문 운동장 터는 구한말 화약 및 무기 제조를 담당했던 관청과 그 수하의 공장이 있던 곳이라고해. 일제가 그 터와 함께살던 사람을 몰아내고 경성운동장을 만들었지. 백여년이 흐른 후 폼에죽고 폼에 사는 오아무개 관리가 곳을 또 허물고 디자인어쩌구하는 근본없는 흉물을 때려박고자 했는데, 이게 웬일이야. 유적이 발굴됐어. 프로젝트 올스탑. 그 유적은 ‘이간수문’이라고 하는 성곽과 수문의 일부인데 조선시대에 청나라와 맺은 불평등조약 (도성의 높이를 제한하는 조항. 짱깨가 조선의 자주국방에 태클건거지) 때문에 궁리하여 변칙적으로 만든 성터였던 것. 발굴된 이간수문과 성곽, 그리고 치성은 어긋난 과욕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냈어. 재밌지 않아?

    답글 - 김림 — 2010/03/13 @ 15:20

  3. yongdol// 술 잔뜩 취해서 응원하는 아저씨들 중에 고등학교 대선배님들도 있었어요.
    가끔 제대로 걸리면 용돈도 주셨다니까요. 그걸로 우리도 맥주 사마시고…
    어쨌든 분명한건 국영수보다 훨씬 중요한 사실들을 동대문에서 배웠다는 것. 승패와,
    나름의 최선같은 것.

    김림// 단순히 풍경에 취해, 기억에 취해 간단히 기록해두는 정도의 일인데 말야,
    막 공부를 하게 된다니까. 난 동대문야구장이 그렇게 오래된 줄 이번에 알았어.
    근본이 찝찝하다고 기회만 생기면 무조건 다 부셔버리는 이 도시를 어째야쓸까.

    답글 - vok — 2010/03/13 @ 17:31

  4. 부숴 없애고 새로 짓는 과정들로 인해 이익을 보인 무리들.. 부수고 새로 짓는 것에 대한 결정 권한을 가진 무리들.. 그 사이에 있는 암거래..
    도시의 재건축 뿐 아니라 주변 가까이에 있는 자전거, 사진 등.. 소비에는 늘 그에 얽혀있는 각종 욕망이 문제..
    되든 안 되든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경계해야할..

    답글 - 스카 — 2010/03/14 @ 11:23

  5. 무엇이 어찌되었든 기억을 수정해야 하는건 괴로와.

    답글 - omomo — 2010/03/15 @ 23:35

  6. 동대문 운동장, 저에게도 의미가 깊은, 추억의 장소네요.
    2003년 대통령배 고교야구, 광주일고가 결승에 올라가서 전교생이 버스타고 서울로 응원갔습니다. 정말 어찌나 신이났던지, 아직도 그 때 생각하면 심박수 올라가네요.
    그때 전 1학년이었는데, 천안북일고를 초장에 떡실신시켜버려서(13-2 승) 경기는 좀 재미없었지만, 얼마나 재밌었는지 몰라요.
    선후배 모두 한목소리로 응원가 부르고, 타학교 선수 놀리고, 대학생된 선배들한테 뒷켠에서 소주도 한잔씩 얻어먹고, 천안북일여고생한테 추근거리고, 그러다 화장실에서 북일고애들하고 싸움붙고, 정말 난리가 났었던 기억입니다.
    당시 MVP였던 김대우는 몸값때문에 튕기다가 고려대가더니, 결국 헐값에 롯데로 갔다가 작년에 볼넷 신기록(5타자 연속) 내고, 지금 대만가있다던데, 그러고보면 참 사람 인생 모르는것 같기도 하고 그렇네요.

    2007년도에도 대통령배 고교야구 결승 올라가서, 대학생 신분으로 동대문운동장을 찾았었죠.
    고교때 대학생된 형들이 서울에서 경기보러 오는게 정말 멋지고 부러웠는데, 어찌나 감개무량하던지.. 경기장 한구석에서 술도 맘껏 먹고, 재학생들 앞에가서 응원지도하고.
    서울고 이형종이 눈물의 역투 속에서, 9회말 끝내기 안타로 역전승거뒀을때(10-9 승), 후배들 얼싸안고 울부짖던 그 순간이 생생하네요. 아, 정말, 그때만 생각하면 순식간에 행복해져요.

    그 얼마나 훌륭하고 멋진 운동장이 새로 들어서도, 그곳에서 예전 동대문운동장이 주던 그 묘한 느낌을 되찾을 순 없을 것 같아요.
    수많은 이야기와 추억이 묻어있는 장소를 오래되고, 디자인 수도에 걸맞지 않다는 이유로 어찌 그리 쉽게 허물어버릴 수가 있는건지.. 여전히, 밉고, 아쉽고, 안타깝고, 그렇네요.

    답글 - denver — 2010/03/16 @ 02:41

  7. denver// 지젓스, 니가 광주일고 출신이구나. 나때도 광주일고랑 시합이 몇번 있었던것 같은데 말야.

    시간도 시간이지만 경기의 내용따위는 기억이 안 난다.
    다만 아스팔트 아지랑이처럼 기분이나 이미지만 어렴풋이 스멀스멀거리는데
    이게 굉장히 뜨겁네.

    무턱대고 부숴버린 동대문운동장은 이제 없으니, 기억에만 존재하네. 그런거 존나 싫어 씨발.

    답글 - vok — 2010/03/17 @ 01:49

  8. 동대문야구장에서였다면 나는 더 기뻤을거야.

    http://sports.media.daum.net/baseball/news/breaking/view.html?cateid=1028&newsid=20100318233404769&p=yonhap

    답글 - vok — 2010/03/19 @ 00:49

  9. 엇. 형 충암고 나오셨군요! 작년 대통령배 일고의 정상탈환을 8강에서 좌절시킨 충암고..ㅋㅋㅋ
    충암고 출신이라면, 기아의 아기호랑이 정용운이 생각나네요.
    아직 꼬마지만, 부디 올해 포텐좀 터져서 좌완 부실한 기아불펜의 한축을 담당해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ㅋㅋ
    그런데 오늘 시범경기에서의 모습은 그닥.. 아직 더 많은 담금질이 필요할듯. ㅋㅋ

    답글 - denver — 2010/03/19 @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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