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28

05. 성공회 서울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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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완벽한 무신론자이지만,
종교적 비호아래 오랜 역사를 축적한 건축물은
어쩔 수 없게도 참 좋아한다.
까마득하게 깎아 쌓은 돌이나 메말라 화석이 된 시멘트,
영원할 것처럼 오히려 단단해진 목조 건축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괜히 경건한 마음마저 든다. 이렇든 저렇든
세월 마일리지는 위대하다.


내가 흠모하는 중구(中區)엔 궁이 있고, 그 주변으로 개화기 건축물들이 촘촘히 서있다.
조선과 대한민국이 절묘하게 뒤섞여 있는 것이다. 20세기 초 격동하는 변화의 흔적이
화석처럼 남아 일종의 커다란 박물관을 만들었다.

몇 해 전 여자친구랑 스치듯 우연히 들렀던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종교적 의미는 본질이지만 나로서는 본질이 아니니까 생략,
1891년 장림성당으로 출발한 성공회 서울대성당은
아서 딕슨의 설계로 1926년 5월 2일 미완성 건물로 축성하고
우연한 계기를 통해 1996년 5월 2일 원설계도대로 완공.
한국전통양식과 로마네스크양식을 조화시킨 건축물로
1978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35호 지정.


아무튼 나의 기준에서 건축물이란
이렇게 100년이 지나도 존재 자체로 진심이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마치 성(省)처럼 지어 올린 아파트들 보고 있으면
소름 끼치고 막 화가 나고 그래…… 어쩌려고 그래?…


여긴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관.

만두찜통 같은 더위를 뚫고 마실 삼아 찾았다가
몇몇 새로운 사실까지 알게 되고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지만
역사 앞에 하찮은 점이 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2010/07/07

04. 러시아공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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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기원이나 원류 같은 느낌의
손탁호텔과 러시아공사관.

20100706TUE

2010/06/01

03. 중앙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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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3대 극장을 꼽으라면
한치의 주저함 없이
명보극장, 코아아트홀, 중앙시네마를 말할 수 있다.
세 극장의 공통점이라면 역시
나의 유년과 연애시대를 아우르는 장소였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제 사라지고 없는 곳이라는 점이다.

코아아트홀과 명보극장은
극장을 포함한 멀티플렉스 공간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종로일대 극장산업의 쇠락과 발맞춰 일찌감치 운명을 달리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질기게 버티던 중앙시네마가
폐관이라는 시대적 숙명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들의 본질은 하나같이
‘낡은 것은 사라져야 하는 것’이라는 사고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아내는 직장을 잃었다.
그 낡은 가치를 (자의든 타의든) 지켜오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다.
사람들은 낡은 극장을 잃었다.


중앙시네마의 마지막 상영작, < 시>의 엔딩크레딧.


예측가능한 수준에서 가장 정신줄 빠진 표정…… 집에 가자……

 
 
 
영화를 보고 나오다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보고
그 길로 면접 후 파트타이머가 된 것이 2003년.
여자친구 일하는 극장이라고 운동화 밑창이 닳도록 드나들며
나까지 영화 참 많이도 봤다.

늘 자기를 괴롭게 한다던 20년 근속 냉혈한 부장님께서
저녁을 드시다 눈물을 쏟으셨다는 얘기를
집에 오는 버스에서 한번, 잠자리에서 다시 한번 쫑알대던 아내는
결국 베개에 똑같은 눈물을 쏟았다.

그래도 야박하게
THE END.

2010/03/13

02. 동대문야구장터

등록된 분류: └ 1. riding, └ 흔적이 좋다     — 태그:     — at 03:08     

흔적이 좋다 02. 동대문야구장터
봄에는 청룡기, 가을에는 봉황대기,
국내 고교야구의 시작이자 끝이며
학생야구의 전부였던 동대문야구장.

중학생 시절 운동장에서 뛰어놀다 야구부 감독님으로부터
“학생, 야구해볼 생각 없나?” 라는 제안을 받고 야구는 내게 특별한 운동이 되었다.
“내일 학교로 어머님 모시고 와.”
그래, 학교에 어머님 모시고 오라는 말만 없었더라면
난 야구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야구선수 = 엄마가 자주 학교에 오셔야하는 학생

출신 중고등학교 야구부가 전국에서 꽤 상위 팀이었던 탓에 응원하러 동대문 참 자주 갔다.
그 해 야구부 전력이 우승을 노려 볼만 하면 일단 학교 운동장에서 응원연습이 잦았고
보통 8강정도 진출하면 그때부턴 수업중단 to 동대문 점령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수업도 안 하고, 대낮부터 떳떳하게 시내에서 콧바람도 쐬고

이기면 기뻐하고
지면 깨끗하게 잊었다.
나를, 나를 대신해 싸워준 친구를 위로했다.

오줌냄새, 나프탈렌 냄새 자욱했던 동대문야구장은 순수함과 일탈의 상징이었다.


2003
우연히 곁을 지나다 마침 경기가 있어 (옛 생각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다.
여자친구가 자꾸 야구규칙을 설명해달라기에 경기가 잘 안 보이는 외야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403
혼자 멍때리러 간 적도 있다.

그랬던 동대문야구장이 재작년 철거됐다.
프로야구 출범 첫 개막전이 펼쳐진 구장이었다.
학기 초에 받은 교과서는 모조리 책상서랍에 넣어두고 야구만 하던 애들이
봄, 가을마다 죽을 각오로 던지고 때리던 경기장이었다.
정말 뜬금없으면서도 대안이 없는 ‘소양강처녀’를 부르며 영혼이라도 판 것마냥 미친 듯 응원하던 스탠드였다.


20100319FRI

그 자리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짓고 있다.

동대문야구장이 사라지면서
아이들은 더 새롭고 좋은 야구장에서 시합하고
관중들은 더 깨끗하고 편리한 환경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도 있다.
헌데 그건 결과론일 뿐이고 그마저도 과연 의도된 바인지 의심스럽다.

동대문야구장에도 역사는 충분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필요했다 하더라도 굳이
100년 가까이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얼룩들로 가득했던 동대문야구장과 바꾸어야만 했을까.

2010/03/04

01. 세검정터

등록된 분류: └ 1. riding, └ 흔적이 좋다     — 태그:,     — at 00:20     

Prologue

흔적이 좋다

처음 떠오른 타이틀은 ‘도시는 아름답다’.
그런데 너무 거창한 느낌이 부담스러웠다.
분명 도시를 아름답다 생각하지만,
무감각하리만치 빠르게 변화하는(혹은 변질되는) 모습보다는
잡초처럼 곳곳에, 꼿꼿이 박혀있는 옛 도시의 모습이 더 좋았다.

도성이 아름답다.
내 기분에 한 뼘 더 가까워졌지만
도성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너무 날카롭다.
그렇게 진지하게 파고들 –잡초의 뿌리까지 뽑아낼- 작정은 아니다.
결국 더 깎아내고 베어냈다.

‘흔적이 좋다’

남아있다는 것, 기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동스러운 흔적이
좁은 이 땅엔 너무 많다. 그리고 복잡한 기분에 휩싸인다.
존재의 신비, 보는 재미, (마치 불안한 내 미래마냥) 훗날의 걱정.

흔적이 좋아 스치듯 들러본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

흔적이 좋다 01. 세검정터 洗劍亭
내게 세검정은 북한산 자락에 흐르는 하찮은 냇물이요,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집에서 가까운 계곡으로 놀러 갔다가
싫어하는 비지찌게와 순두부를 억지로 먹으러 들르는 동네의 이름일 뿐이었다.
아버지께서 “세검정 가자.” 말씀하시면 순두부를 먹어야 한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뜻이었다.

도대체 세검정이 뭘까? 궁금증이 들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었다.
녹번동, 수유동처럼 으레 동 이름이겠지 생각했는데
실제로 세검정동은 없었다, 깜짝이야! (종로구 신영동에 있다)

인조반정 때 광해군의 폐위를 논의하고 칼을 씻은 자리라 해서
세검정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정자(누각)을 중심으로 한 일대를 통틀어 세검정이라
부르기도 한다. 정자는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겸재 정선의 그림을 토대로
1977년 복원하였다고 한다.

뭔가 애매모호하면서 아버지의 표현 또한 틀리지 않다.
세검정터 근처를 그냥 다 세검정이라 부르면 되는 것이다.
북한산성, 탕춘대성을 따라 시간이 멈춘듯한 동네
육중한 바위 위에 조금은 보잘것없는 정자 하나가 대뜸 서있을 뿐이다.

북악산을 가운데 둔 종로구의
앞마당이 광화문, 종각 일대이라면
뒷마당은 세검정터를 기준으로 펼쳐져 있다.
일종의 랜드마크인셈.

십 수년간 세검정, 세검정 부르면서
오로지 세검정만을 위해 찾은 건 오늘(저녁)이 처음이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아득하고, 그 느낌은 가히 즐거웠다.

욕심을 내 그 순두부집에 들렀지만
아쉽게도 영업이 끝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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