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두들기는 손가락이 아리다.
사건은 6시간 전 출근길, 강남역을 향하는 471번 버스 안.
한 명의 오차도 없이(착석을 기준으로) 정원이 꽉 들어찬 버스에 올라타
주섬주섬 엉켜버린 CD플레이어 이어폰을 조물딱거리던 찰나-
“학생! 에어컨이 나오면 문을 닫아야지!”
가래 섞인 목소리의 근원지는 맨 뒷자리에 앉아 계신 어르신.
학생이라 불러주셔 감사했던 것은 아니고 뭐 아무튼
“네?” 라고 대답하며 의중을 되묻자
어르신, 버스 천장을 가리키며
“에어컨 나오니 닫으라고.”
자리가 없어 서있던 게 죄라면 죄.
뚜껑을 힘차게 끌어당겨 천장 환기구를 닫았다.
이윽고 왼손 중지와 약지에서
토마토 주스 같은 피가 콸콸콸 흐른다.
환기구 뚜껑 손잡이에 걸려 손가락이 찢어졌네.
가방을 뒤적여 봐야, 피를 닦을만한 무언가는 운명처럼 없더라.
하는 수 없이 주먹을 꽉-쥐고 손을 하늘로 올리자
팔뚝을 타고 흐르는 핏물. 오오-
아 씨발 문짝.
닭똥눈물처럼 서럽게 떨어지던 핏줄기를 방목한채 자리가 나
일단 앉았다. ‘옷에 닦을까?’ 고민하며 손목을 부여잡고 있는데
어느새 앞에 선 여성분이 힐끔힐끔 내 손을 바라본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원하고 평온한 버스에서
그토록 선혈이 낭자할 만한 상황은 흔치 않으리라.
힐끔힐끔, 머쓱머쓱 그러기를 10여 분.
가방에서 엠보싱 빵빵한 휴지를 꺼내어 준다.
그 때까지 멈추어 주지 않은 피와 상처에 감사해야 할까.
“감사합니다.”
반전은 여기서부터.
내가 국가대표이자 471번 버스승객 대표로 뚜껑 닫다 다쳐
피를 콸콸 쏟고 있었음을 주위에 있던 모든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
여기저기에서 파생된 ‘한마디’들이 날아와 귀에 꽂힌다.
“총각, 아까 뚜껑 닫다 그런 거지?”
“피가 엄청 많이 나네, 병원 가.”
“뭘 어떻게 만들었길래 뚜껑 닿는다고 손이 저렇게 된댜?”
이윽고 뒷자리에 앉아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일상적으로 쉽게 보기 어려운 알콜솜(!)과
척 보기에도 전문적인 반창고를 주신다.
“감사합니다.”
알콜솜으로 손에 묻은 피와 상처를 닦고 반창고를 붙였다.
더 이상의 유혈사태 없이 버스는 평화를 되찾았다.
사실 그쯤 되면 스스로 버스에서 내려 상황을 수습할 법도 한데
애써 출근시간 맞춰 나온 초일류 보람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을 뿐더러
버스에서 내려 대처해야 하는 일련의 일들에 대한 막막함이 너무 컸다.
피는 개인적이다.
또한, 피는 민폐다.
이 개인적인 울림을 빌어
휴지를 건네주신 여성분과
전문 의약품을 제공해주신 아주머니께 감사의 말씀을.
진심으로-
20060530T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