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rtrait yoko

Portrait kamzza
홍대. 20070428SAT
1)
민감해진 탓인지 모르겠지만, 자주 비가 오는 것 같다.
반면, 기억- 엄밀히 말하면 이미지는 흐려진다.
습도가 높으면 색이 선명해지는 것과 달리
비가 한번씩 내릴 때마다 차츰 기억의 채도는 옅어진다.
다행일까?
그저,
가끔씩 비가 내리는데
그 가끔과 가끔의 간격이 실제로는 굉장히 넓어
도마뱀의 꼬리가 조금씩 잘려나가듯 잊게 되는(잃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잊으려고 하는 것인지, 반대로 잊지 않으려고 잘릴 줄 뻔히 아는 그 꼬리를
잡으려 애쓰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굳이 따지자면 후자에 가까우리라, 나는 그런 인간이니까.
아무튼 요즘은 무한 다운힐.
즐겁지도, 상쾌하지도 않은.
2)
아버지께서 차를 바꾸셨다.
새 차야 앞으로 지겹게 타게 될 테니 별 감흥이 없는데
우리 집의 첫 자가용이었던 엘란(풀네임 “엘란트라우마 93년식”)은 못내 아쉽다.
가족 네 사람 모두의 초보운전시절을 견뎌내고
크고 작은 사고 속에서 보험처리 푸짐하게 받으며 장수한 레이싱머신(!)이었건만.
지난 주말 차 타고 외출할 일이 있어
황사비 쫄딱 맞은 차를 먼지떨이로 훔쳐내다 느꼈던 녹록한 세월의 흔적(닦아도 닦아도 깨끗해지지 않는 빛깔이랄까),
디젤트럭 부럽지 않은 엔진소리가 이제야 안타깝다.
그날 도로가 많이 밀려 ‘씨밤바, 지하철 탈 걸…’ 하고 후회했는데
마지막 운전인줄 알았다면 깜빡이라도 한번 더 넣어줄걸.
자동차 자체나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역시나-
그 쇳덩어리가 즐거운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는 메타포이기 때문.
뻔하다.
3)
변화.
낡은 것은 새로운 것이 될 수 없다.
그렇지만,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은 될 수 있다.
새로운 것에서 낡은 것으로의 변화.
잘 느껴지지는 않지만 가장 확실한 변화가 아닐까?
20070421FRI

Landscape
그렇게 감성적인 편이 못 되어서,
아니, 미숙한 감성을 이성으로 짓누르는 타입이어서
좋은 글을 읽는다고 번듯한 이미지를 상상하는 경우나, 반대로
멋진 이미지를 마주한다고 詩想이 떠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물론 시를 쓰지도 않는다).
감성이나 이성을 들먹일 것이 아니라, 그저 단순하다고 해야 하나.
이미지는 이미지, 글은 글로서 유효할 뿐이다.
뭐 문제될 일은 없지만 서도-
내가 찍은 사진에 캡션을 붙이는 일조차 참 낮 간지럽고 쑥스럽게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진을 찍는 행위에 -기록 말고는-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으며
한낱 몇 킬로바이트에 지나지 않는 결과물은
운이 좋아 기억을 돕거나 시시콜콜한 우스개거리를 만드는 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보고 듣고 읽고 쓰는 일이 오감으로 체감할만한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하는 셈.
그런데 가끔 난데없는 풍경에서 관계없는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다.
수도꼭지에서 엄청난 박력으로 물이 쏟아지는 모습을 보며
비가 오던 날이 생각났고, 그야말로 콸콸콸 기억이 쏟아졌다.
저쪽 도마에서는 팔뚝만한 생선의 대가리가 잘려져 나가고 있는데
하얀 물보라가 프로젝터 스크린이라도 된 것마냥 기억을 영사해냈다.
아, BGM은 키린지였다.
20070410TUE
고도가 낮은 비행기의 그림자가
검은 냇물에 드리워졌다.
제법 쌀쌀하고 어두운 산책로를 걸었다.
이쪽으로 한번, 저쪽 반대편으로 한번.
공단과 아파트 사이를.
플랫폼에 서서 우두커니 열차를 기다리는데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잽싸게 올라 탄 열차가 덜컹덜컹 땅 속으로 들어오자 어두운 창문에 얼굴이 비쳤다.
오만상을 찌푸린 표정. 아, 내가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싶었다.
그 어떤 경우에도 동일한 패턴, 즉
시간에 의해 기쁨도 슬픔도 곧 무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스스로 체념했던 경우 또한 한번도 없었다.
까다롭고 번거로운 알고리즘.
20070410TUE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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