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새를 못 참고 다시 찾은 인수봉길 형제페인트.
역시 예상대로 완성돼있었다!
글자들의 입체감이 더욱 강조되었고
‘신앙촌간장’의 광고비중이 훨씬 높아졌다.
내가 또 간장양념을 억수로 좋아하잖아……
수치심을 모르는 쿨한 道時男子답게 셀프타이머로 한 컷.
이곳에 도착해서야 여태껏 바지 지퍼를 열고 달려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쩐지 아랫배가 싸르르 계속 아프더라고.

그새를 못 참고 다시 찾은 인수봉길 형제페인트.
역시 예상대로 완성돼있었다!
글자들의 입체감이 더욱 강조되었고
‘신앙촌간장’의 광고비중이 훨씬 높아졌다.
내가 또 간장양념을 억수로 좋아하잖아……
수치심을 모르는 쿨한 道時男子답게 셀프타이머로 한 컷.
이곳에 도착해서야 여태껏 바지 지퍼를 열고 달려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쩐지 아랫배가 싸르르 계속 아프더라고.

평창동 카페 오펜바하
아담한 3층짜리 건물에 흔치 않게 흡연석까지 마련되어 있어 출근길마다 매번
들를까 말까 고민하지만 ‘커피지옥으로 출근하는 주제에 뭐 하는 짓인가’ 싶어 그냥 지나친다.
하지만 머지않아 결국 들르게 될 것 같다. 나는 질 것 같아.

그냥 한번 들러본 자전거로만
애써 찾아간 수고가 가엽게도 영업시작은 오후 1시부터.

산마르코 콩코드 라이트 쥬니어
짧고, 좁고, 깊고, 딱딱하면서 무겁기까지 하다.
마치 좌변기에 앉은 것마냥 FIT 되어 포지션 변경이 거의 불가능.
엉덩이에 굳은살이 많이 생긴 탓인지 안장에 앉아있는 시간이 적은 탓인지
어느 안장이든 이질감이 별로 없어 다행이다.
대충 엉덩이를 얹으면 쏙 들어가는 밀착감이 좋고
앞 코가 극단적으로 짧아 댄싱 후에 가랑이가 걸리지 않아 편하다.

퇴근했지만, 심심하며 딱히 할 일마저 없으신 점장님께서 집까지 데려다 주셨다.
캐리어에 자전거를 올리면서 ‘자전거가 더러워지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자동차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Sportful HOT PACK
어쩐지 요즘 참 유용한 핫 아이템.

인수봉길 빨래골교 위에 페인트 가게가 하나 있다.
가게 오른편으로 벤치 몇 개가 놓인 쉼터가 있어 출근길에 종종 들러 쉬곤 한다.
쉼터가 먼저였는지, 페인트 가게의 압도적인 풍경이 먼저였는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어쨌든 이유 없이 마음에 들어 그닥 힘들지도 않은데
일부러 들러 쵸코바도 까먹고 담배도 피웠다.
몇 번을 들르다 보니 자연스레 주인어르신과 마주칠 수 있었는데,
그 만남이 처음부터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첫만남
(나는 창문너머로 가게 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어르신: 뭐여?
나: 아, 아닙니다. 그, 그냥……
어르신: 뭐여……
두 번째 만남
(나는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르신: 뭔 사진을 찍어?
나: 아, 아닙니다. 그, 그냥…… 지나가다……
어르신: 사진 찍을게 뭐 있다고, 어서 나왔어?
나: 그런거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오늘, 출근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또 들렀더니
멀리서 봐도 익숙하던 그 색깔이 아니다. 앗, 이게 무슨 일이야?
나: 안녕하세요?
어르신: (고개를 까딱하신다)
나: 가게를 새로 칠하시네요?
어르신: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이게 나무로 지은 가건물이어서, 칠이 다 떴어.
내가 직접 칠하면 되는 거니까, 그래서 칠하지.
나: 지난번 칠이 되게 멋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주 들렀어요.
어르신: (갑자기 두 손을 모으시더니 고개를 숙여 인사) 그랬구먼. 감사합니다.
나: (급당황) 아이고, 아닙니다.
어르신: 칠이 다 떴어, 다 일어나서……
나: 색이 지난번보다 더 밝아졌습니다.
어르신: 응?
나: 색깔이 지난번엔 더 진한 파란색이었는데.
어르신: 응, 그랬지.
나: 근데 오늘 비가 올 것 같네요.
어르신: 페인트가 유성이라 비와도 괜찮아. 비오면 집에 들어가면 되지.
지금은 칠하느라 셔터를 닫아놨는데, 셔터 열고 들어가면 돼.
나: 그래도 새로 칠하시는데 비오면……
어르신: 응. 비오면 아무케도……
나: 가게가 멋있어서 지나가는 길에 가끔 들러서 구경합니다.
어르신: 다 떠서 새로 칠해야 돼.
나: 네, 다 칠하실 때 쯤 또 들를게요.
어르신: 그랴, 고마워.
나: 비 오면 들어가시고요, 수고하세요.
어르신: 자네도 빨리 가.
어르신 안경에는 페인트가 잔뜩 튀겨있었다.
나머지 출근길을 내달리며 비가 내리지 않길 바랬지만
언제부터 약속을 그렇게 잘 지켰다고, 요즘 일기예보는 참 잘도 맞아
이내 몇 분 후 내 고글에 빗물이 튀기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셔터 열고 들어가면 된다.

하동관에 가서 혼자 곰탕을 먹고,
마트에서 맥주 집어오듯 순식간에 운동화 한 켤레를 사고,
정말 오랜만에 아내가 일하는 극장에 들러 영화를 한편 보았다.
여주인공의 미모는 빼어났지만 결국 하품을 꺼이꺼이 해대며 뜬눈으로 졸고 말았다.
극장 휴게실 구석에 앉아 짬짬이 본 슬램덩크가 훨씬 재미있었다.

태양의 흔적과 가로등 불빛이 공존하는 시간
어쩐지 그 즈음을 참 좋아하는데, 아마 찰나의 순간이기 때문일 거야.

굉장히 기피하는 ‘밥집 줄서서 기다리기’.
역시 사람은 간사해서 오랜만이라 할만했다.
특히 아내의 해맑은 표정을 보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역시나 오랜만에 들른 카페 뎀셀브즈.
‘특별한 선택 커피(?)’라는 게 있어 인도네시아 만델링을 주문.
원하는 원두를 고르면 커피메이커로 내려주는 방식이었다. 뭔가 알고도 속은 느낌.
그렇지만 레큘러 커피보다는 훨씬 훌륭했다(레귤러 커피는 그야말로 대용량 커피메이커 방식).
데이트의 마지막 코스로 영풍문고에 들렀는데
1년 반만에 이노우에氏의 리얼 9권이 나왔더라.
샀다.

새벽(?) 여섯 시 반,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길을 나섰다.
몇 주전부터 벼르던 북한산 종주를 위해 점장님과 불광역에서 만났다.
사전 지식 부족하고 결단력 떨어지는 중년 남자 둘은 불광동 등산로 입구를 못 찾아 땀 뻘뻘, 쩔쩔.
그 와중에 점장님은 똥 낳으러 분만실까지 방문하셨다.
일찍 만난 게 참 무색하고, 나마저 똥줄이 탔다.

결국 불광역 입구 찾기를 포기하고
애초에 알고 있던 구기터널 옆으로 난 입구를 통해 급하게 입산했다.
사진에서도 느껴진다, 긴박함과 똥줄탐.

비봉에서부터 대동문까지는 능선코스이기 때문에 첫 번째 꼭지점에 도착하는 시간이 관건이라 생각했고
사진이고 나발이고 급하게 비봉까지 내달렸다. 30~40분쯤 소요.
비봉 도착 후 의기양양해져 챙겨온 간식도 먹고 사진도 찍고 여유와 허세 작렬.

사랑하는 여인을 기다리다 돌이 된 남자, 이름하여 사모바위.

토악질 해대며 힘들게 오르던 북악산이 저만치 아래 있다.
남산은 물론 한강에, 강남까지 보인다.
이 묘한 시공간적 쾌감이 사람을 산으로 부르는 건 아닐까?

당근 설정.

아마추어 등산객의 뻔하디 뻔한 포즈 ‘바위 위에 짝발’.

나는 집 밖에만 나오면 콧물이 난다.
사실은 집에서도 콧물이 난다. 후루룩쩝쩝.

승가봉 근처 어디쯤.
“우웨에ㅏㅇ롷이ㅏㄹ쟁ㄱㄹㅈ댈~”

문수봉 우회코스를 지나 도착한 청수동 암문.
여기서부터는 북한산성 성곽을 따라 걷기만하면 된다.
울렁울렁 오르락 내리락 하기는 하지만 부담 없고 무난한 코스.

걸어도 걸어도 여전히 높고, 슬슬 지루해 졌.

대동문을 끝으로 성곽 길에서 벗어나
진달래능선으로 빠지자 낯익은 인수동 전경이 펼쳐진다.
(나무에 절묘하게 가려 가게는 끝까지 안 보였다.)

무사히 가게도착, 출근완료.
지난 여름 휴가 때 설악산 흔들바위까지 올랐던 등산(이라기보다는 산책) 이후
오랫만에 산행이었고, 심지어 자의를 갖고 산에 오른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힘들게 내려올 텐데, 뭐 하러 힘들게 올라가지?’라는 사고에 등산을 하찮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틀렸어, 등산은 위대하다! 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기분을 전환하고, 스위치를 바꾸어 켤 수 있게 되었다.
경치도 구경하고, 바람도 쐬고, 걸어서 출근했다.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아마도.
작은 것에 호들갑스레 분노하던 성질은
어느덧 쉽게 체념하는 성격으로 진화하고 말았다.
온전히 나를 위한
그리고 나의 가족을 위한 주말이 사라지자
시간이 덧없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미안해서,
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다 잠을 깨워 이내 또 한번 미안해져 버렸다.
맥주를 사러 나갔다가
담배 한대만 피우고 그냥 들어왔다.
잠깐 잊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담배도 끊어야겠다.
체념할 일이 아니다.

Coffee & Cycle

새 프레임 개비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점장님, 또 한건 하시다.

이제는 그닥 갈 일이 없는 (어느날의) 학동사거리

원샷하기 딱 좋은 콜라

밤의 아스팔트는 낮의 아스팔트보다 빛난다.
흔적이 좋다 02. 동대문야구장터
봄에는 청룡기, 가을에는 봉황대기,
국내 고교야구의 시작이자 끝이며
학생야구의 전부였던 동대문야구장.
중학생 시절 운동장에서 뛰어놀다 야구부 감독님으로부터
“학생, 야구해볼 생각 없나?” 라는 제안을 받고 야구는 내게 특별한 운동이 되었다.
“내일 학교로 어머님 모시고 와.”
그래, 학교에 어머님 모시고 오라는 말만 없었더라면
난 야구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야구선수 = 엄마가 자주 학교에 오셔야하는 학생
출신 중고등학교 야구부가 전국에서 꽤 상위 팀이었던 탓에 응원하러 동대문 참 자주 갔다.
그 해 야구부 전력이 우승을 노려 볼만 하면 일단 학교 운동장에서 응원연습이 잦았고
보통 8강정도 진출하면 그때부턴 수업중단 to 동대문 점령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수업도 안 하고, 대낮부터 떳떳하게 시내에서 콧바람도 쐬고
이기면 기뻐하고
지면 깨끗하게 잊었다.
나를, 나를 대신해 싸워준 친구를 위로했다.
오줌냄새, 나프탈렌 냄새 자욱했던 동대문야구장은 순수함과 일탈의 상징이었다.

2003
우연히 곁을 지나다 마침 경기가 있어 (옛 생각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다.
여자친구가 자꾸 야구규칙을 설명해달라기에 경기가 잘 안 보이는 외야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403
혼자 멍때리러 간 적도 있다.
그랬던 동대문야구장이 재작년 철거됐다.
프로야구 출범 첫 개막전이 펼쳐진 구장이었다.
학기 초에 받은 교과서는 모조리 책상서랍에 넣어두고 야구만 하던 애들이
봄, 가을마다 죽을 각오로 던지고 때리던 경기장이었다.
정말 뜬금없으면서도 대안이 없는 ‘소양강처녀’를 부르며 영혼이라도 판 것마냥 미친 듯 응원하던 스탠드였다.

20100319FRI
그 자리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짓고 있다.
동대문야구장이 사라지면서
아이들은 더 새롭고 좋은 야구장에서 시합하고
관중들은 더 깨끗하고 편리한 환경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도 있다.
헌데 그건 결과론일 뿐이고 그마저도 과연 의도된 바인지 의심스럽다.
동대문야구장에도 역사는 충분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필요했다 하더라도 굳이
100년 가까이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얼룩들로 가득했던 동대문야구장과 바꾸어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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