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rtrait yoko
속초. 20080803SUN
벌써 반년 전의 일이지만
‘지도를 확인하고, 페달을 밟으며’ 지나쳤던
동네들의 이름이 생생하다.
2006년 9월 6일 수요일

속초 고속버스터미널 1
잠깐이지만 바닷바람이나 쐴겸 속초까지 함께 왔던 정인이를 서울로 떠나보내며.

속초 고속버스터미널 2
취사도구, 텐트, 침낭, 자전거공구, 옷가지 기타등등 잔뜩 짐을 짊어진 내 자전거.

속초시 청호동 김봉천 할아버지(64세)
출발도 못한 채- 끊어진 체인을 손수 수리해 주셨다.

을씨년스러운 주문진해수욕장

강릉시 진입

오후 늦게 도착한 경포대해수욕장
세계 요트선수권 대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구경할 여유도 체력도 없어 그냥 지나쳤다.
2006년 9월 7일 목요일

이른 아침, 정동진
강원도 內 해변은 자정 이후에 야영이 금지되어 있어 정동진역에 딸린 주차장에 텐트를 치고 숙박했다.

헌화로

묵호항을 향해 늘어선 바닷가 마을

야트막한 고개가 끝없이 울렁이는 삼척시 해안도로
‘눈앞에는 절경, 마음에는 절망’

동막

용궁리

이튿날 밤을 묶게 된 갈남마을
마을 입구에서 밭일을 보러 나오신 할머니를 뵙게 되었는데, 인사를 드린다는 것이 그만 하룻밤 자고 가게 되었다.
50가옥 안팎의 마을 전경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왼편 하얀집이 이복주 할머니댁.
2006년 9월 8일 금요일

삼척시 갈남마을 이복주 할머니(77세)
밤새 매캐한 냄새가 나서 의아했었는데, 할머니께서 곰국을 끓이시다 솥을 태우셨단다.
막내 손주 생각이 나신다며 자꾸만 걱정을 하시는데 후루룩 마셔도 모자랄 곰탕 국물이 목에 걸렸다.
도저히 짐을 보탤만한 상황이 아니었지만 챙겨주신 미역 한 단, 마른오징어, 사이다, 박카스를 꾸역꾸역 가방에 넣고 다시 출발.

여전히 지옥같은 고갯길의 연속, 삼척에 드리운 비구름

멀리 보이는 호산해수욕장
삼척의 길이 그토록 험하지 않았더라면 이튿날 야영을 하려했던 호산해수욕장에 세째날 정오가 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안녕히가십시오 강원도
헛구역질과 욕지거리. 입으로 배출가능한 더러운 것(!)은 모조리 쏟아내며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 만난 이정표.

울진군 죽변

울진군 후포리
갓길 아스팔트 위에 앉아 쵸코바를 투입하였다.

영덕시 진입

백석 고래불 해수욕장
조개껍데기처럼 보였던 하얀 점들이 순식간에 날아올라 화들짝 놀랐다.
갈매기가 너무 많아 더 이상 접근불가.
2006년 9월 9일 토요일

영덕 강구항 한켠
아침 일찍 여관을 나서 영덕터미널에 도착했다.
컨디션이 점점 나빠져 걱정이 됐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사고가 났다.
터미널에서 강구항을 향하던 중, 도로에서 입 속으로 날아든 꿀벌을 삼키고 앞바퀴를 축으로 180도 회전하여 넘어진 것.
자전거 뒷드레일러가 휘어버려 변속에도 문제가 생겼다.

영덕 강구항
고민 끝에 속초 - 부산 - 해남으로 계획했던 여정을 아쉽지만 영덕에서 마치기로 결정했다.
햇볕에 그을려 입은 허벅지의 화상과 오전에 넘어지며 다친 무릅, 자전거 손상.
더 이상 나머지 일정을 소화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서울에서 영덕까지 와준 재웅이 형
재웅이 형은 여행 전부터 중간 기착지점에서 만나 밥 한끼 사주겠다고 약속받은 나의 히든카드였다.
결국 BMW에 자전거를 싣고 편하게 귀환(혹은 송환).
이 글을 빌어 김봉천 할아버지, 이복주 할머니, 재웅이 형,
그리고 길을 여쭐 때마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전해지길.
이복주 할머니, 얼마 전에 전화를 드렸더니 목소리가 밝으셔서 마음이 놓였다. 올해 안에 꼭 다시 찾아뵐 기회가 생기길.
2006 서울-속초 투어기
이번 투어는 워밍업 / 전반전 / 후반전 / 연장전 정도로 구분할 수 있겠다.
1박 2일 동안 서울에서 자전거로 출발, 이튿날 속초를 반환하여
다시 서울로(물론 이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돌아오자는 계획 아래-
몇 주를 날씨 탓만 하며 미루고 미루다 무작정 떠나고야 말았다.
투어 전체를 아우르는 테마는 ‘준비부족’, ‘경험부족’, 될 데로 되라 식의 ‘개념부족’.
워밍업
금요일, 하루 종일 소나기가 내려 2주전부터 계획하고 미루던 투어에 잔뜩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그리하여 별생각 없이 퇴근 후 달리기 시작했다. 몸 속에 알코올이 이입되자 ‘간단히 소주 한잔’이라는 모토는 흐릿해지고,
어느새 알코올 속에 몸을 이입시키는 자아를 발견할 찰나, 형에게 전화가 왔다.
“집에 안 와? 내일 안 가?”
몰래 가방을 챙겨, 카메라를 챙겨, 정신을 챙겨 자리를 빠져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여전히 비가 내린다. 주룩주룩- 씨발, 가길 어딜가?
나흘 연속 밤샘근무의 마지막 밤을 농밀한 알코올로, 쏟아지는 비로 마감했다.

▲ 이미 반쯤은 맛이 간 상태의 나.
전반전
자정이 넘어 집에 도착했다. 오랫만의 퇴근, 일상적인 폭우.
피곤에 치여 찌든 몸이야 어찌됐건 새벽 4시에 일어나 날씨를 체크하고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출발하기로 했다.
위에서 역류하는 소주냄새에 취해 곧장 잠이 들었다. 이윽고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굉장한 폭우다.
카약 투어라면 미친 척 도전해보겠지만- 고민이고 자시고 냅다 도로 누웠다. 그리고 또 잤다.
오전 8시, 다시 깨어보니 안개가 자욱하고 가랑비가 흩뿌리는 상태.
상황이 뜻대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올해 안에 출발할 수 있을까?
걱정스런 표정으로 대문까지 따라 나선 아버지와 어머니, 앵두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섰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새벽 5시에 출발했어야 했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

▲ 꼼꼼히 짐을 싸는 나. 기상상태가 상당히 눅눅했기 때문에 카메라는 지퍼백에 담아 가방에 넣었다.
지퍼백에 바람을 빼다가 구멍이 났기 때문에 별 효력은 없었으리라.
지하철을 5호선을 타고 상일동까지 이동했다.
자전거로 서울 시내를 벗어나는 일이 은근히 번거롭고, 또한 프로들은 원래 그렇게 합니다-
라고 둘러댈 법도 하지만, 비 때문에 늦어진 출발시간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고자 별 생각 없이 그렇게 했다.
종로 3가에서 김밥 한 줄을 샀지만 지난밤 과도하게 섭취한 알코올 때문에
이미 출발 전부터 탈수상태에 빠진 나는 퍽퍽한 밥알이 목으로 넘어갈 리 없었다.

▲ 내 몫의 김밥까지 열심히 먹는 형. 좋은 모습은 아니다.
정확히 오전 10시, 양평 방향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 ‘상일동’에 도착했다.
슬슬 긴장이 됐다. 안 가봐도, 안 해봐도-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 더 크리라는 짐작과 걱정.
그래서 더 해내 보이겠다는 얄팍한 투쟁심.
실패의 쓴맛을 알고 있었다. 6년 전, 재성이와 자전거로 대부도에 가겠다 마음 먹고 아스팔트에 섰으나
시와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헛구역질을 하며 자장면을 먹던 기억.
성공의 단맛을 그려보았다.

▲ 상일동. 경험자로서 괜찮은 척 하려 애썼겠지만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는 중. 각종 중요한 물품들이 모두 들어있던 핸들가방과 힙쌕을 비롯-
속도계니 뭐니 아무튼 본부 역할은 형이 다 했다. 난 과감하게 관광모듈만 작동.
출발했다.
미사리 조정경기장을 지나 팔당대교를 향해 나아갔다.
가랑비가 내려 땀도 나기 전에 옷자락이 젖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팔당대교.
다리 위헤 올라 이번 장마의 위력을 실감했다. 어릴 적 어머니가 타주시던 미숫가루의 농도에 버금가리만큼 강렬한 강물.
수위도 엄청나게 높았다.
투어 내내 그러했지만, 특정장소에서 휴식을 제외한 지체는 최대한 자제했다.
계획상 첫날 최소한 홍천까지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인제까지는 가야 했기 때문에 다소 감정적 건조상태에 빠지더라도
전진하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때문에 끈적한 한강을 뒤로하고 또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보기에 썩 유쾌한 장면도 아니었다.)
형이 길을 잘못 고른 탓에 팔당대교를 건너 길이 500m 내외의 터널 네다섯 개를 연속으로 통과했다.
터널은 정말 정신 없다. 깜깜한 건 둘째치고, 소리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갓길도 없어 신경이 곤두섰다.
터널에서의 안전포인트는 뒤에서 제 아무리 경적을 울려댄다 한들 돌아보지 않는 것.
내가 넘어지면 지구가 쪼개진다는 딱딱한 마음이 필요하다. (실제로 넘어지면 나 하나 뒈지는 건 자연의 섭리)

▲ 터널지옥을 빠져 나오자 마자 마주친 풍경. 기찻길 옆 잔디축구장. 물안개가 근사했다.
터널을 빠져 나와 조금 더 달리니 양수대교.
양수대교에서 바라본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낮게 깔린 구름과 물안개 사이, 그 좁은 공간 속의 ‘아득함’.
풍경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 정말 멋있었다.

▲ 양수대교 위에서. (사진의 힘이 시간과 감동을 기록하는데 있다고들 하는데, 그건 잘 찍은 사진에만 해당되는 얘기인가…)

▲ 조금 넋을 잃은 형.
오전 내내 날씨도 오락가락, 도로 상태도 오락가락, 술기운도 오락가락-
그 와중에도 페달질은 계속되어 양평휴게소에 도착했다.
여행이 계획될 당시부터 형제의 ‘유리체력’에 대해 스스로 걱정이 많았고,
그것은 현대사회에 뿌리깊게 박힌 원초적 과제이기 때문에 ‘별수없다’라는 식의 논점 흐트러뜨리기로 흐지부지 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아무튼 심각하게 지쳤다. 슬슬 고갯길(이하 ‘업힐’) 많아진 탓도 있었다.
안 먹겠다고 정수기 앞에서 물만 들이키며 삐대는 동생을 설득하여 오뎅우동을 먹게 만든 형은
동생 대신 선지해장국을 먹어 ‘잊지 않고’ 조롱을 샀다.
챠밍한 메뉴로 브런치(!)를 해결하고, 음료수와 초코바도 챙기고 투어의 전반전을 무사히 마무리.
▲ 결국 우동 앞에 앉는 나. 면발이 이상하리만치 쫄깃해서 많이 남겼다.
후반전
양평휴게소까지는 오른편에 강이 흘러 그나마 보는 재미라도 있었는데
양평에서 홍천까지는 평지 혹은 경사도는 낮고 긴 업힐이 많아 보는 지루지수가 상승했고 은근히 더 지치는 듯 했다.
더불어 구름이 개이고 해가 떠 온도가 상승, 짜증도 상한가. 카메라 꺼낼 일이 더욱 드물어 졌다.
보통 한 시간에 20km정도를 달리고 10~20분 정도 휴식을 취하는 패턴이었는데,
초반엔 주로 내가 앞서 달리다가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후반엔 형이 앞서 달리는 상황이 반복됐다.
문제는 따라가는 것이 앞서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것.
내가 앞서 달릴 때는 형이 뒤에 바짝 붙어있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노가리도 깐 반면,
형이 앞서 달릴 때는 내가 한참 뒤쳐져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지 않는 이상 노가리는커녕 누구 한 명이 논바닥에 처박혀도 모를만한 갭이 발생.
일종에 고독함이 몰려왔다.
정확한 지점은 생각나지 않지만 업힐에서 무리하게 기어를 변속하고 하중을 가한 탓에
“빡-“ 소리와 함께 체인이 빠져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 했다. 사소하지만 하나 둘씩 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 빡-하고 체인이 빠져 빡-돌아있는 나.
오후 3시경 첫날의 최소 목적지였던 홍천에 도착했다.
홍천에서 하룻밤을 지내고도 다음날 속초까지 다녀왔던 형의 경험 -물론 그리하여 일정이 거의 2박3일로 늘어났다는
첨언도 빠뜨리진 않았지만- 을 빌어 심리적 여유가 생겼다.
5시간 동안 100km를 조금 더 왔기에(휴식시간 포함), 세네 시간만 더 달리면 인제에 도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홍천 초입 오렌지스 휴게소에서 “이제부터 더 가는 건 우리한테 남는 장사야.”라는 형의 외침…
남는게 아니라 남이다…

▲ 그러나 그도 지쳐있었다. 양평휴게소에서 사둔 초코바를 철근처럼 씹던 모습.
이제부터 더 가는 건 우리한테 남는 장사야.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면 다리는 한결 더 무거워졌다.
다행이라면 도로사정이 여태껏 보다 좋아졌다는 사실.
아니, 사정이 좋아졌다기 보다는 인제로 향하는 도로가 확장공사 중이던 까닭에
자동차는 지날 수 없지만 아스팔트가 곱게 깔린 미개통 도로의 행운이 따라준 것이었다.
불과 1~2m 옆을 스쳐 지나가던 자동차 압박감의 있고-없고 차이는 상당했다.
지방국도의 매력을 흠뻑 느끼며 옥수수 밭도 지나고, 작은 읍내도 지나고 또다시 가열찬 페달질.
얼굴과 팔이 빨갛게 익어 따갑다. 챙겨온 선크림을 발랐기에 그나마 화상을 면한 정도.
얼마나 달렸을까, 오른편에 힐끔힐끔 강줄기가 보인다.

▲ 리트팅 많이 한다는 내림천 하류.

▲ 유통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샘물나라 생수를 마시는 형.
두말할 필요도 없이-
또 달렸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홍천-인제 구간 지방국도에 괜찮은 휴게소 < 팜파스>.
사실 그다지 쉴 타이밍이 아니었는데, 여느 휴게소에 비해 아담하고 정갈한 모습에 핫바와 호두과자를 사먹었다.
(어쩌면 투어 내내 쉬어야 할 타이밍이었는지도.)
하얀 석조 건물 옆에 작은 뜰이 있고 작은 잔디밭, 그네, 벤치 등이 있다. 추천메뉴는 생수.
지치고 지치다 보니 이런 것도 이슈!

▲ 팜파스 휴게소에서. 걸어갈 힘이 없었기 때문에 전경 사진은 찍지 못 했다.
인제가 가까워 질수록 지형이 험해졌다.
우리가 향하는 방향을 따라 지리멸렬한 업힐이 계속 펼쳐졌는데,
설악산 자락이 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반가운 해석도 가능했지만
우리의 한계도 멀지 않았음을 깨닫게 하여 두려워졌다.
핸들만 잡으면 목마르고, 페달에 발만 올려놓으면 땀이 났다.
정승휴게소 전 좁고 까마득한 업힐. 정말 까무러치는 줄만 알았다.
페달이 부러지나, 내 허벅지가 부러지나 둘 중에 하나는 결단이 나야 끝이 날 것만 같은 상황.
후반전 최대의 난관. 끝끝내 정복은 했지만,
미련 없이 불태웠을 때 남는 건 하얀 잿가루뿐이야.
미련 없이 불태웠을 때 남는 건 하얀 잿가루뿐이야.
미련 없이 불태웠을 때 남는 건 하얀 잿가루뿐이야.
미련 없이 불태웠을 때 남는 건 하얀 잿가루뿐이야.

▲ 정승휴게소에서 잿가루의 나.
앞서 들렀던 < 팜파스>와 사뭇 대비되는 요란스러운 분위기의 정승휴게소는 체력회복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기분이 들게 했다.
거대하고 의미 없어 보이는 조형물들도 그렇고, 리메이크전문 가수가 부르는 “사랑보다 깊은 상처” 따위 노래도 그렇고.
잿가루자세로 한참을 앉아있는데 마침 앞을 지나던 <2006년 통일기원 국토횡단> 자전거 군단이 보였다.
지원차량 몇 대에 라이더만 100명에 가까운 거창한 행렬이었는데 갑자기 가장 후미에 있던 두 대의 자전거가 충돌사고를 일으켰다.
안쓰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지만, 잠깐만 한눈팔면 같은 일이 숱하게 일어날 만큼 행렬의 간격이 좁았기 때문에
‘통일이고 나발이고 사람이나 잡지 마라’ 라는 생각이 들더라.
인제까지 더 이상 이렇게 과도한 업힐은 없을 거라는 형의 위로에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출발.
시간은 오후 5시를 넘고, 해가 낮아지기 시작한다.
▲ 소양호에 떨어지는 노을 빛을 배경으로 형. 그러나 은근히 업힐이다.

▲ 인제대교 위에서 형.

▲ 인제대교에서 바라본 풍경. 그날 밤 뉴스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강원도에서 가장 비피해가 심했던 지역이 인제였다고 한다.
인제대교를 건너 터널 하나를 뚫고 마침내 인제 시내에 입성했다.
주말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시내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서울 시내의 주말모습을 상상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딘진 살풍경한 분위기에 짓눌려 좀처럼 목표를 달성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묵을 숙소를 찾기 위해 터미널 근처로 갔지만 마땅한 곳도 없었다. 결국, 어차피 내일이면 거쳐야 할 곳이고,
몇 해 전 군에 있던 선배 면회 차 들른 경험이 있던 원통까지 더 가기로 했다.
작은 동네지만 설악산 자락에 위치한 군부대 군인들의 외출 집결지인 탓에 제법 복작복작 했던 기억이 있었다.

▲ 인제 시내로 진입하는 나. 불행히도 인제에서는 물한방울 못 마신 채 떠나게 됐다.
인제-영통은 그리 먼 거리가 아니고, 내일을 위해 한 시간 가량의 시간을 세이브하는 의미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많았지만-
몸의 피로가 너무 심해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라는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심지어 땅거미 깔리기 시작한 도로는 울적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번 투어 중 최초로 진지한 허기마저 찾아 왔다. 어떤 길을 달렸는지 기억조차 없다.
원통하다 원통해.
예상했던 것처럼 인제에 비해 사람이 많다. 물론 대다수가 군인이었지만.
특이할 만한 점은 동네 규모에 비해 위락시설(PC방, 노래방, 다방 등)이 과도하게 많았다.
선배 면회 때 들렀던 버킹검 모텔에 방을 예약하고(성수기라 하룻밤 숙박료가 5만원!), 저녁 식사를 했다.
테이블 개수보다 메뉴의 개수가 많아 더 허름하게 느껴지는 식당에서 형은 갈비탕을, 나는 육계장을 먹었다.

▲ 서비스인지 기본메뉴인지 모르겠지만 계란후라이가 제공되어 반가웠다.

▲ 버킹검 모텔 303호(304호였나?)
저녁 식사 후 곧바로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내일의 일정에 대해 잠깐 상의.
계획보다 훨씬 멀리 왔기 때문에(첫날 총 주행거리 150km), 내일 이른 오후쯤에는 속초에 도착 가능한 스코어였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뭐니뭐니해도 이번 투어 최대의 난코스인 미시령 고개를 남겨두었기 때문이리라.
미시령만 생각하면 사고 없이 150km 완주해 냈다는 뿌듯함마저 수그러들었다. 아아-
페리카나 영통점에서 후라이드 치킨 반마리를 시켜 맥주와 함께 먹고 곤히-
은하계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하여 후반전 종료.
연장전

▲ 아침 7시, 혼절 상태의 나. 베개 속에 손을 넣고 자는 버릇이 있다.
제대로 걸을 수나 있을까 걱정하면 잠들었던 것에 비해 다리가 말짱하다.
새벽녘 나쁜 꿈을 꾸어 찝찝하긴 했지만(누군가에게 장도리로 머리를 강타당하는 꿈), 뭐 나름 상쾌한 아침.
쵸코칩 쿠키로 대충 배를 채우고 때우고 숙소를 나서 안개와 고즈넉함이 가득한 영통을 시가지를 빠져 나왔다.
문득, 다시는 들를 일이 없을 것만 같았던 영통엘-
그것도 자전거를 타고 다시 오게 되었다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언젠가, 또 어딘가를 이런 식으로 찾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찌릿찌릿 감동이 일었다.
감정이 복받쳐 페달을 밟았는데, 여지없이 다리가 아팠다.
영통에서 속초방향으로 10km쯤 달리자 사방이 산이다.
골짜기를 따라 뚫린- 갓길 없는 1차선 도로인데 지속적이고도 쫀쫀한 업힐에 속초로 나가는 차량도 제법 많아 쉽지 않은 코스.
햇볕마저 뜨거워 어제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처럼 괴롭다.

▲ 현재에는 1차선 도로지만 골짜기를 따라 고가도로를 만들고 있다.
미시령 터널로 연결될 모양인데, 교통은 원활해 지겠지만 이런 구도로들이 점차 사라지게 되어 아쉬운 마음.
영통-속초간 거리가 대략 50km정도인데, 미시령고개 앞까지 25km정도를 달렸다.

▲ 미시령상회, 신도로 때문에 아무래도 아리까리하여 주인아주머니께 길을 물어보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제 미시령이다.
정상까지의 거리는 3km. 짧다면 짧지만 경사각이 높고, 직선거리가 짧다. 이를 테면 우리 몸의 내장 같은 모습.
처음부터 너무 저단기어로 조지다간 나중에 그마저도 못 버티면 어쩌나 걱정되어 허세를 부렸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후진(!)할 뻔 했다. 급기야 무리하게 변속을 감행하다 체인마저 빠졌다.
첫 타석 삼진. 아, 씨발. 감이 좋지 않다.

▲ 탄력만 제대로 받으면 원통까지 한 큐에 갈 수 있을 듯한 경사도.
억울한 심정으로 체인을 끼고 나뭇잎으로 손을 닦으며 심호흡, 심호흡, 릴렉스.
내가 뭐 랜스 암스트롱도 아니고, 하다하다 안 되면 맘 편하게 끌고 갈 작정으로 기어를 최대한 낮춘 채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큰 거 한방보다는, 볼넷을 고르던 데드볼을 맞던 진루만 하면 된다는 선두타자의 심정으로-

▲ 그런대로 잘 올라가는 형.

▲ 업힐주행법. 경사도를 줄이기 위해 꼬불꼬불한 길을 꼬불꼬불하게 달린다.
달린다고 하기에도 쑥스러운 속도.

▲ 내려다본 설악산 풍경.

▲ 어느 배짱 두둑한 드라이버의 드리프트 자국. 부디 무사했기를 바란다.

▲ 길 옆으로 난 작은 골짜기. 물이 최고로 시원하기 때문에 저런 포즈가 나올 법도 하지만 좋은 행동은 아니다.

▲ 웃으려 해도 웃을 수 없는 형의 마음, 난 알아.

▲ 슬슬 정상이 보인다. 물론 정상까지 가는 길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다이렉트하진 않았다.

▲ 미시령 휴게소.
드디어 정상, 그리고 완주.
출발하는 순간부터 ‘중간에 멈추거나’, ‘돌아올 일이 없으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실패할 일이라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계획이 완벽하지 않으며, 모자라는 부분이 많지만
끝까지 갈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출발할 수 있었다.
우박이 쏟아지면 지붕을 찾아 쉬어가면 될 테고,
다리가 끊기면 온전한 다리를 찾아 돌아가면 된다.
해왕성에 옥탑방 딸린 연립주택을 짓는 일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 바람 때문에 저 정도 표정이 한계다. 하물며 한계령으로 갔으면 어땠을까.
구름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앗쓰바-
핫바와 초콜릿을 사먹고, 모처럼 커피도 마시며 고갈된 체력을 보충한 후
‘페달은 그저 거들 뿐’ 인 9km 다운힐 공략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3km 업힐에 9km 다운힐. 이거 완전 남는 장사다.

▲ 시속 50km를 돌파한 다운힐. 오를 땐 그토록 짜증나던 커브가 내려갈 땐 재미를 증폭시켜 주었다.

▲ 속초 해수욕장, 미란다를 마시는 나란다.

▲ 바다에 발 담가본 일이 몇 년만인지. 캐감동!
정오가 되어 투어 최종도착지였던 속초터미널/속초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총주행거리 204km, 평균속도 시속 20km, 경기종료.
Thanx to

몇 가지 불안정한 세팅이 발견되었지만 허술한 몸뚱이를 속초까지 무사히 배달해준 < 어셜리>

그리고 형. 혼자였다면 몇 배의 시간과, 몇 배의 지루함, 몇 배의 다짐이 필요했을런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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